데이비드 로빈슨(David Robinson)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인격장애에 대해 쓴 책을 보면, 다양한 주차형태의 그림과 이에 부합되는 인격장애의 종류가 간략히 적혀있다. 환자의 주차형태만 보고 인격장애로 진단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독자들에게 병의 특징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유익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당신의 경우를 상상해 봐도 좋다. 두 대의 차가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경우라면 의존성 인격장애 증세가 있어 보인다. 다른 차가 나가지 못하게 앞을 막아버린 경우 반(反)사회성 인격장애일 것이고, 주차장 통로 한가운데 주차한 경우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두 칸에 걸쳐 주차한 경우는 수동공격성 인격장애, 앞뒤좌우로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주차하는 경우는 강박성 인격장애라 할 만 하다. 또 한쪽 구석에 숨어있는 경우 회피성 인격장애, 옛 애인 차를 옆에서 들이받는 경우 경계성 인격장애의 특성에 해당된다고 한다. 물론 이 해석을 우리 상황에 그대로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오래된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중주차는 기본이고, 이중(二重)주차된 차를 앞뒤로 밀다 보면 위에 나열한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경우가 많다. 좌우로 반듯하게 주차해도 옆 차가 바짝 붙여 세우면 문을 열기 어려워 고생하는 경우도 생긴다. 대규모 신축아파트 단지가 선호되고, 가격차이가 커지는 상황은 지긋지긋한 주차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사람들의 마음속 욕구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 차원에서 주차장으로 인한 국민 스트레스 해소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단계에 와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 주차장법 관련규정이 개정돼 주차면의 가로 폭이 현행의 2.3미터(일반형)에서 2.5미터로 늘어난 ‘확장형 주차면’이 신설되었다 한다. 접촉사고 방지와 승하차시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노외주차장의 20%이상에 대해서만 강제될 뿐, 아파트나 주상복합과 같은 주거관련 주차장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고, 건축주의 선택사항일 뿐이라고 한다. 서울시에서는 설치중인 ‘여성전용주차구획’도 색깔과 무늬만 달라질 뿐, 가로폭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한 것 같다. 좀더 살펴보니, 예전에는 주차장법상 대부분의 주차면의 가로폭이 2.5미터로 여유가 있게 책정되어 있었는데, 1990년 12월 법이 개정되어 현재까지 가로폭이 2.3미터로 축소되어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주종차량 규격에 비해 지나치게 1대당 주차구획이 크게 책정돼 주차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어서” 개정되었다고 한다. 건축주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주차대수를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일수도 있었겠지만 미래 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 같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주택정책의 오해와 진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줄고 가구당 인원수가 줄어드는 데도 자동차는 중대형화 되어가고 있는데, 이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분양한 일부 수도권 아파트단지에서 확장형 주차장을 일정 비율로 채택하거나, 확장형에 근접하는 2.4미터 폭으로 주차장을 설계했다고 선전하는 것을 보면 주차장 문제에 대한 건설사의 인식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에 소비자의 선택의 폭은 좁기만 하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기둥 때문에 폭을 넓혀 주차선을 새로 긋기가 쉽지 않다. 지하층을 추가로 더 파기도 어렵다. 대중교통수단의 이용이 권장되더라도, 자가용은 마음 편히 집안에 주차해 둘 수 있어야 한다. 주차장 스트레스의 근본 처방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때다. -출처 : 조선닷컴 | 작성일:2009년 10월 20일 11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