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모 국회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작년 12월 국회의원들이 보인 모습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psychopath)이자 사이코패시(psychopathy)”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이명박 대통령도 사이코패스’라 열렬히 주장하는 글들을 드물지 않게 접한다. 하물며 다른 유명인사들이야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바야흐로 한국에 ‘사이코패스 전성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만하다. 자신의 지적 능력과 사회적 배경, 사교술을 활용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성공한 사이코패스’ 용어가 관련 서적에 나오는 것을 보면, ‘성공하려면 싸이코패스가 되어라’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2005년 5월14일자 조선일보 지면에 ‘사이코가 성공한다?’ 제목의 기사가 인상을 쓰고 있는 존 볼튼 사진과 함께 실렸는데, 영국의 심리학과 교수인 것처럼 소개된 벨린다 보드(Belinda Board)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을 인용 보도한 것이었다. 알고 보니 70명이나 되는 영국 써리대학 심리학과 박사과정 학생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자로 하여금 뉴욕타임즈의 편집자를 격렬히 비난하게 만들기도 했던 그녀는, 존 볼튼 유엔대사 지명자가 고집불통의 성격의 소유자로 일종의 사이코패스라고 주장하였다. 사이코패스는 사실 아주 복잡한 정신병이다. 단순하게 특정 증세를 보고 사이코패스로 진달할 수는 없다. 멜린다 보드 역시 자신의 연구를 통해 ‘교도소 수감자나 정신질환자에서 나타나는 사이코패스의 성격특성이 기업체나 정부에서 성공한 사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나쁠 것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사이코패스적 성격특성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심하게 나타나느냐가 중요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존 볼튼 전 미국 유엔대사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저명인사에 대해, 직접 정신의학적면담이나 검사를 실시한 적이 없는 상태에서 매스컴을 통해 자신의 전문가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미국의 정신의학계 혹은 심리학계의 윤리지침과 상충되는 측면이 있지만, 요즘 사이코패스로 지목되고 있거나, 인터넷에 떠도는 자가진단검사를 통해 스스로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연구일 수도 있겠다. ‘심리, 범죄와 법(Psychology, Crime & Law)’라는 학술지의 2005년 3월호에 실린 그녀의 논문을 구해서 읽어보니 연구방법이나 결과해석에 있어서 토론거리가 적지 않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정신질환 진단분류체계인 미국정신의학회의 DSM-IV 에는 사이코패스 대신에 ‘반사회성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는 병명이 사용되고 있으며, 보는 관점에 따라 개념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사이코패스는 범죄심리학 분야에서 주로 언급되는 개념으로,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로버트 헤어가 개발한 PCL-R (Psychopathy Checklist-Revised)이라는 검사가 성격 측정에 많이 이용된다. 치료감호병원에서 이 검사수치가 높을수록 공격적 행동의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측한다. 예일대 정신과의 도로시 루이스(Dorothy Lewis)교수는 “사이코패스의 진단기준과 조울증의 증상이 겹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조울증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의 임상적 판단에 기초한 정확한 진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 출처 : 조선닷컴 | 작성일:2009년 10월 20일 11시 | |